문명의 발달

프로이드와의 수다 | 2013. 6. 5. 14:51
Posted by 엄민옥

  인간이 행복을 얻고 고통을 막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은 정말 여러 가지가 있는데, 다시 말하는 것은 리비도의 이동성이다. 사랑을 하게 되면, 목표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행복을 적극적으로 실현하려는 원초적이고 열정적인 노력을 고집한다. 이렇게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에서 모든 만족의 삶을 찾음으로써 고통과 거리를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미를 즐기는 것에서 인생의 행복을 찾을 수 있게 된다. 미를 즐기는 것은 감각을 가볍게 도취시키는 독특한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 역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가 있다. 신도들이 신을 열정적으로 믿는 것도 리비도가 그쪽으로 가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종교는 인간을 강제로 심리적 유아 상태로 묶어 놓고 그들을 집단 망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많은 사람을 신경증에서 구제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 이상의 성공은 거의 거두지 못한다. 이처럼 인간이 얻을 수 있는 행복을 통하는 길은 수없이 많지만, 확실하게 행복으로 통하는 길은 하나도 없다.

 

 

  인간은 왜 그토록 행복해지기가 어려운가. 우리는 고통의 세 가지 원천인 자연의 힘, 신체적 허약함, 가족 국가 사회에서 오는 제도의 불완전함으로 인해 힘들어 한다. 이와 같은 고통을 막는다는 이 정신학적 분야가 얼마나 성공하지 못했는가를 생각하면, 여기에도 정복하기 어려운 자연의 일부가 배후에 숨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혹이 떠오른다. 이것이 바로 문명이다. 문명을 포기하고 원시적 상태로 돌아가면 우리는 훨씬 행복해질 것이다. 문명의 발달을 이룬 서구인들 보다, 원시적인 민족이나 종족의 생이 그처럼 태평스러웠던 것은 자연의 풍부한 혜택 덕분에 인간의 주된 욕구가 쉽게 충족되기 때문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문명인들은 저마다 신경증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문명인들은 자신의 문화적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욕망 단념을 견디지 못하고 신경증에 걸리게 된다. 즉 사회의 요구를 폐지하거나 줄이면 다시 행복해질 가능성이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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