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망대해의 느낌

 

인간의 가치추구의 기준이 상반되는 결과를 낳을 수가 있다. 동시대인들에게 존경받는 위인들은 일반인들과는 분명 다른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 사람들이 그렇게 관심 없어 하는 부분에 있어서 위인들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한다. 모든 사람은 하나도 똑같지 않고 다르기 때문에 생기게 된 결과일 수도 있다.

이처럼 다른 부류의 사람 중 예외적인 소수 측에 속하는 로맹 롤랑이라는 이는 종교적 감성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종교적 감정이라는 것의 진정한 원천은 어떤 독특한 느낌이 있다. 이 느낌은 영원에 대한 감각 비슷한 것으로써, 경계가 없는 망망대해 같은 느낌이다. 이것이야 말로 종교적 에너지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망망대해 적 느낌은 과학적으로 다루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그런 영원성은 세상과 절대로 떨어질 수가 없다. 그러면서 영원성은 종교적 욕구의 원천이자 기원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영원을 지향하는 직관적인 느낌을 통해 주위 세계와 밀접한 관계를 암시받는 생각은 이상하기 때문에, 정신분석적으로 설명하려고 애를 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 이다. 일반적으로 자아만큼 확실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자아는 구별되는 이드라고 불리는 무의식적인 정신적 실체와 뚜렷이 이어지고 있다. 자아는 이드의 겉포장 구실을 하고 있다.

자아는 외부 세계에 대해서는 분명하고 뚜렷한 경계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외가 있다면 사랑에 빠져 있는 상태일 뿐이다. 사랑에 빠져 있는 남자는 나와 너는 하나라고 선언하고, 그게 사실인 것처럼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처럼 자아와 대상의 경계가 생리적 작용으로 말미암아 일시적으로 제거될 수 있다면, 병리적 작용에 의해서도 혼란에 빠질 수 있을 게 분명하다. 병리학적 연구를 통해 자아와 외부 세계의 경계가 불확실한 상태를 많이 알게 된다. 분명히 자신의 자아에서 비롯되는 일이고 자아가 마땅히 책임을 인정해야 하는 일들을 모두 외부 세계 탓으로 돌리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자신의 자아 감각도 얼마든지 혼란에 빠질 수 있고, 자아의 경계도 변함없이 일정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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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민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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