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 1

프로이드와의 수다 | 2013. 6. 17. 14:25
Posted by 엄민옥

  우리의 친척인 동물들은 왜 그런 문화적 투쟁을 보여 주지 않을까? 그것은 우리도 모른다. 우리가 만일 개미나 꿀벌이 수천 년에 걸쳐 이룩한 사회 속에 들어가서 생활을 하면, 각 개체에 할당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해도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현재 상황을 나타내는 지표이다. 다른 동물의 경우에는 환경의 영향과 그들 내부에서 서로 충돌하는 여러 본능들이 일시적인 균형 상태에 도달했을 지도 모르는 것이다.

  개인은 자신의 공격 본능을 무해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어떤 수단을 사용할까? 개인의 공격 본능은 안으로 돌려져 내면화 한다. 실제로는 공격 본능이 나온 곳으로 돌려지는 것이다. 그러면 초자아로서 나머지 자아 위에 적대적으로 군림하고 있는 자아의 일부가 그것을 인수하여, 양심의 형태로 자아에 대해 가혹한 공격성을 발휘할 준비를 갖추는 것이다. 이처럼 개인의 내부의 공격성을 감시하는 주둔군을 둠으로써 개인의 위험한 공격 욕구를 통제하게 된다.

  사람은 어떻게 죄책감을 갖게 되는 것일까. 일단 스스로 나쁘다 라는 것을 알고 있는 짓을 저질렀을 때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또한 사람이 실제로 저지르지 않고 그 짓을 하려는 의도만 품을 경우에도 죄책감을 느낄 수가 있다. 그러면 이 의도를 행위와 똑같은 것으로 간주해야 하는 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된다.

우리는 인간이 선악을 구별하는 능력을 본래부터 타고났다는 주장을 거부할 수도 있다. 나쁜 짓이 자아에는 바람직하고 즐거운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여기에는 외부의 영향력이 작용하고 있으며,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이 외부의 영향력이다.

  나쁜 짓을 해도 권위자가 알아내지 못하거나 알아내더라도 그들을 나무라지 못할 거라고 확신하면, 그들에게 즐거움을 약속하는 나쁜 짓을 습관적으로 거리낌없이 저지른다. 그들은 단지 권위자에게 들킬 것을 두려워할 뿐이다. 권위자가 바로 앞서 설명한 외부의 영향력이라고 통칭할 수 있다. 오늘날의 사회는 일반적으로 이런 심리 상태 속에 빠져 있고, 이것을 분석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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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aum2 2013.06.24 23: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 흔적을 쫓아 와 님의 심호한 글을 좀 읽어봅니다. 학창시절 정과 그릇에 관해 많은 상념들을 자행했습니다. 이제 늙어 나이들어 세파 속에 안주하니 그리움이 먼저였으며, 이겨내는 과정이 더 중요하군요. 자주 뵐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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